2009년 7월 2일 목요일

투신 시간이 그 시간이 된 이유 - 네티즌 또잉님의 글입니다.

3분만에 산길 500미터를 뛰어갔다 왔다는 사실
경찰의 실측 결과 젊은 경찰이 2분43초만에 뛰어 갔다 왔으므로 당시 경호관도 그렇게 했으리라는 가설은 의문의 여지가 많다
경호원의 나이는 45세이기에 본인이 직접 뛰어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전에는 믿기 어렵다. 게다가 현장검증시 본인이 현장에 있었음에도 젊은 사람이 대신 검증을 하고 본인이 시연하지 않았으니 더욱 믿기 어럽다.
경호원 본인이 3분 이내에 뛰어 갔다 올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데 3분 안에 왕복이 가능하다면 그건 젊은이도 전력질주를 하였을 때 가능한 것인데 당시 고인이 정토원 원장이 있는지 보고 오라는 사소한 심부름을 완수하기 위해 그렇게 전력질주를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 경호관은 자신의 진술에 의하면 고인을 잃어버려 이리저리 찾아다니는 와중에도 등산객과 함께 30미터를 걸으며 담소를 나눌 정도로 침착했다.
어쨌든 무슨 이유로든 전력질주를 해서 3분만에 정토원에서 원장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왔더니 경호해야 할 고인이 보이지 않았다면 그 주위에 있는지 찾아보기라도 하고 찾을 수 없다는 것이 확인 된 이후에 동료경호관과의 연락을 취했을 것이다. 통화내용도 “놓쳤다‘ 안 보인다.” 로 찾아 봤는데 찾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모든 일이 3분 안에 이루어졌다고는 믿을 수 없다.

경호원은 노 전 대통령이 떨어진 시간을 네 번을 바꿔 진술했다
처음엔 6시30분 이후 잠시 시선을 돌린 틈에 고인이 뛰어내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그 전에 경호원이 혼자 있는 것을 목격한 증인이 여러명 나타나면서 그 진술은 신빙성을 잃었다
두 번째 6.14에서 6.17 사이에 정토원에 다녀오는 사이에 투신했다고 진술했다
---이 진술은 최종 진술과 일치한다
그러나 또 진술을 바꿔서 6.20 이후에 등산객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고 오는 사이에 투신했다고 했다
---3분 사이에 500미터의 산길을 왕복하고 고인을 찾아보고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한다는 것이 본인 생각에도 가능성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진술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 시간도 바뀐다
네 번째이자 최종적 투신시간에 대한 진술은 두 번째와 같은 6.14~6.17이 된다

왜 6.14~6.17이 고인의 투신시간이 되었을까?
그 외의 시간에 투신했다면 다른 여러 목격자의 진술과 정황증거와 심각한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부엉이 바위 위에 있는 고인을 봤다는 초병의 목격시간을 6.10으로 바꿔가면서까지 6.14~6,17을 투신시간으로 정한 것일 것이다

즉 고인이 투신했다면 그것이 가능한 시간대는 6.14~6.17밖에 없는 것이고 그 외의 시간에 고인이 죽었다면 그것은 타살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2009년 7월 1일 수요일

의문사 - Nicholas님의 글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82385)

전임 대통령이 '서거'되는 나라.
그 '서거'가 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국민'들은 알 수도 없는 나라.
'조문'과 '추도'하는 '국민'이 견찰군화발에 짓 밟히는 나라.

지금 우리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읍니다.

그 '분'이 떠나신지 보름이 다가와도 '돌아가셨다는 사실'이외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견찰에서는 90여명의 특별수사본부를 꾸리고 수사한다고 하나
발표할 때마다 달라지는 '수사내용'에 그 신뢰성을 상실한지 오래입니다. 더구나 수사
결과가 일개 범부가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않는 엉성한 내용으로 점철되어감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감정을 넘어 이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모두가 '역사'앞에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읍니다.

아래의 내용은 '허위사실'을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 철저했을 견찰의 수사결과를
공식적으로 중간중간 발표함에 있어 상식적인 차원에서 이해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함이며, 그러므로 더더욱 철저한 수사를 통해 '후대'에 가서도
그 누가 수사결과에 대해 토를 달 수 없이 공명하고 정확한 '사건경위'를 밝혀달라는
'국민'으로서의 정당한 요청이기 때문입니다.


본론 ....


어제 견찰에서 '수사내용'에 대해 일부 '발표'가 있었으나, 그 내용에 '의문점'이 있었으며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에 올려져 있읍니다.

▶謹弔◀[보도]내 대가리론 이해안되는 '현장검증'의문점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82385)


지금 가장 '의문스러운 점'은 '현장'에 '핏자욱'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발표된 내용대로라면 노 대통령께서는 추락후 '약 37분가량' 방치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37분동안 머물렀을 자리에는 (보도내용에만 의하면) 발견되었다는 '혈흔'이 거의없고
따로 (신발한짝과 함께 발견된) 발견된 " 상의에는 피가 많이 묻었고 바지와 경호차량 안에도 피가 묻었다" 고 한다.

여기서 '발표내용'을 그대로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37분간의 방치시는 "혈흔이 고일 정도의 양은 아니고 낙하로 뚝뚝 흐를정도" 인데
산아래로 이동시에는 " 상의에 피가 많이 묻어있고 바지와 경호차량안에도 묻었다"
"상의에 피가 묻은 것은 이송과정시 후두부에서 흐른 것이다" 라고 발표했다.

'묻은 것' 이라 표현 함은 '다량의 출혈'이 아니라는 말이다. 머리에 11Cm의 열상이
있는 상태에서 37분간 출혈이있었을텐데 '묻을 정도' 만 발견되었다면 말이 되는가?
37분이면 피가 흘러 고인정도 가아니라 응고되었어도 한참 응고 되엇을 것이다.

일단은 여기서 "혈흔이 미진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일차적으로 정리해 두자.

그러면 어떻게 이런 상황이 나올 수 있는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고당시 노대통령께서는 어떠한 '상처'를 받았을까를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부분도 알려진 바로는
언론에 보도된 자료밖에 없으며 각 언론마다 대강의 내용은 비슷하나 매체마다 차이가 있어 전체적으로 자세한 파악은 어렵다. 여러 매체를 종합하는 수 밖에 없다.


정리하면,

1) 정수리부분의 11Cm 열상 과 목부분의 열상 및 출혈
2) 두부골절 (머리 뒷부분이 심하게 손상된 상태)
3) 늑골골절 및 혈흉 (흉막안쪽으로의 출혈 고임 )
4) 양쪽 팔 골절
5) 척주골절 ( 다 부러짐: 어떤 자세여야 다 부러지는지 생각 필요)
6) 골반골절
7) 우측발목 골절

로 요약될 수 있다. 이를 도식화 해본다.



이런 '상황'에 대해 '스포츠조선'은 다음과 같이 '사고당시'를 추정하고 있다.


즉,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앞으로 머리부터 떨어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두부손상'에 있음에 비중을 두었기에 내릴 수 있는 추론이다.

허나.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이 도출된다.

머리가 아래로 향하고 낙하하였을 경우를 가정할 때 '고인'의 타격부위가 언밸런스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점이다.

1) '머리부분'이 먼저 '착지'하게 되었을 경우에는 '목뼈'가 온전할 리가 없다. 적어도
상체와 동시에 비스듬히 '착지'할 경우를 가정한다면 어깨뼈 (가장 약한 쇄골) 가
온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머리부분이 먼저 '착지'한 상태는 아니다.
사인의 직접적인 요인이 '두부골절 내지 골절로 인한 2차병변'이겠으나 이 부분이
낙하시 '가장 먼저 발생된 충격'이라는 정황은 없다. 만일 목뼈의 골절 내지 탈골
이상의 증상이 함께 발견되었다면 모를까 '단순한 복합골절'과 '열상'만으로는 1차
충격부위가 머리라는 것을 입증하지는 못한다.

2) '머리부분'으로 '착지'하고 뒤이은 2차,3차 충격으로 기타부위의 골절이 일어날 수
도 있을까? 인체의 탄성계수의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으나 1차 착지시 접지충격의 80% 이상은 인체가 흡수할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다시 튀어올라 내리 떨어져서
2차 충격이 기타부위에 골절을 야기시킬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대부
분의 '골절'은 '1차착지 충격'에 의해 발생된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한 면을 고려할 때, 고인의 '타격 상태'는

3) '고인'의 '타격상황'을 고려할 때 '착지자세'는 등을 바닥으로 머리에서부터 골반
부위까지 동시에 떨어져 '접지'된 상태 로 보인다. 이럴 경우 머리/늑골/ 척추
및 골반골절이 동시에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엔 양팔과 발목의 골절까지
설명되지는 않는다. 만약 1차 충격후 상당한 거리를 두고 다시 낙하하여 2차/3차
충격이 있었을 경우에는 구르는 회전력이 더해지면서 발목이나 팔이 골절이 일어
날 수 있겠지만 보도된 사진내용으로 볼 때 2차/3차 접지지점을 나타낸 노란
깃발의 주변을 보면 수풀에 덮여있어서 그 개연성은 상당히 떨어진다.

4) 머리의 '열상' 또한 약간 설명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 대개의 경우 바위나 땅에
머리를 부딛힐 경우에 발생될 수 있는 상처는 '열상'이 아닌 '찰과상'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부딛히는 단면적만큼 피부가 이까래지면서 벗겨지며 일어나는
'상처'이지 예리한 부분과의 접촉에 의해 '찢어지는' 상처는 아니라는 것이다.
3) 항의 상황을 고려할 경우 설명이 어려운 이야기이다.

5) 여기까지의 '추론'으로만 보면

ㄱ) 머리부분의 '열상'은 '낙하시의 충격'이 직접적 원인은 아니다.
ㄴ) 고인의 '1차 충격'시에는 머리/가슴중 한 방향부분 (거의 오른쪽 가슴)/
등판/ 골반 (엉덩이) 부분이 동시에 '착지'한 것으로 보인다.
ㄷ) 양팔과 우측빌목의 골절은 '직접적인 1차 충격'에 의한 것은 아니다.

정도가 정리될 수 있다.

내가 무슨 '법의학자'도 아니고, 더군다나 실제 '시신상태'를 확인한 사람도 아니면서
제한적으로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만을 토대로 여러가지로 가정을 하고 상황분석을 해 보지만, 일반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어디에서든 이해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그 부분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고인'의 '화장'전에 부검이 어려우면 '생활반응'만이라도 확인했었더라면 이러한
의문은 '추론'할 필요조차 없었을텐데.....참으로 안타 깝다...그럴만한 사유가 있었을 것이라 본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더 이상의 자세한 자료없이 '추론'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나 혼자만의 '의문'으로 남겨둘 요량이었다. 그거야 내 '자유'이니까 비난받을
하등의 이유도 없고 나혼자만의 '생각'차원이니까 아무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오늘 아침 이글을 보게된다.


노통이 자살했다고 믿는자는 ...이글을 읽지마라..!!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83681 )

글 내용 중 나오는 부분...


이 내용....그간 왕왕 '아고라'에 올라오는 내용이었고 나도 일차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오늘 아침 위에 적은 내용을 생각을 하다가 이 글을 보니까 모든 의문'이 풀리는 듯 싶었다.

혈흔이 1차 착지지점에 거의 없는 이유....'착지순간' 다발성 골절이 동시에 일어나게 된 이유...양팔과 발목에 골절이 나타난 이유.....두정부에 열상이 나타나게 된 이유...

모든 것이 이 '상황'을 대입하면 아주 자연스러이 설명이 가능해진다는 사실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는가? 일일히 설명이 필요하신가?

가정해보라..'포대에 구부리고 들어가있는 상황'에서 45m고공에서 던져진다면?

자유로운 신체는 탄성계수가 낮지만 둥글게 뭉쳐져 있는 신체는 마치 공처럼 탄성계수가 증가된다는것은 기본적인 자연법칙이다. 그런 신체적 통제가 가해진 상황하에서는 신체의 후면부위가 동시에 '착지'되기가 더욱 쉬워진다는 점은 여러분도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 '1차 충격'후 다시 튕겨 회전하며 그 아래의 지면 혹은 바위와의 2차 접촉부위가 '가슴을 감싸안은 팔 부위'이고 다시 튕겨 비약하며 내리
떨어져 부딛힌 그 다음 '3차 접촉' 면이 '우측 발목'부분이었다면....
'손상부위'에 대한 설명이 아주 간단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은 신체가 자유로운 상태에서의 낙하시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양손의 골절이 단 한번에 자연스럽게 설명되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이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윗글을 참고로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시라..

"만약 '두정부'의 열상'이 '추락'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상처 " 라면?
분명히 위의 '기사내용'에서 자세히 나온다.


'머리 정수리부분에 11Cm의 열상'
'머리 뒷부분이 심하게 손상된 상태'



이건 '별도'의 '개별적인 '상처이다.
이 두가지 '상흔'이 '1차 접지 충격'시에 동시에 발생된 '상흔'으로 볼 수 있을까?


(아래는 잠시 '광고말씀' - '드래그 하시면 보입니다. )

'아고라'에 들어오시는 '의료계' 분들 ...한 두분 아니시자나요...
님들께서 전면에 나서기 어렵다는 현실 ...이해 합니다...
그래도.....
이런... 저의 의견에 ' 기다 아니다' 토만이라도 달아주시면 안되나요?

님들의 '일침'이 없으시면 잘못된 '추론'은 계속 잘못된 방향으로만 갑니다.
님들께서 지적해주시는 '한마디'에 말 안되는 많은 '개연성'이 사라지며 조금 더
'현실'에 가까운 의견들이 개진될 수 있읍니다.....'협조' 부탁드릴께요...꾸벅...

(광고 끝 !)


물론 여기까지는 자세한 자료가 없이 알려진 '보도'자료'만을 통한 '추론'일 뿐이다.
그러나 '추론'만일지라도 '언밸런스'하다는 것을 충분하게 '인지' 할 수는 있다.

천에 만에 하나... 저 '두정부'의 '열상'이 가장 먼저 발생된 '상흔'일 경우....
'추락'과 관련된 모든 상황은 어찌 돌아가는 것인가?

내가 5월27일날

▶謹弔◀ '부검'이 정히 어려우시면 제발 이렇게라도 해주세요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23801)

라는 글을 통해 간절하게 바랬었다..... 이런 경우의 '증거 보존'을 위하여...

간단하게 확인할 수있는 몇 가지 '생활반응'만 하였더라도 지금 이런 '추론' 자체가
전혀 필요없을텐데 말이다...

MB정권....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일반인들도 이럴 경우는 '나 아냐.' ...'난 절대 아니야' 하며 히려 '사건과의 연관성'이 없음을 밝히려고 "결백'을 증명하려 꺼꾸로 '부검'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과다할만큼 '조사'를 하려하고 해야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세상사는 사람들의 일상인데...

참...이상하게도....아무런 그 '뭐'가 없다는거....
'견찰'....그들의 말이 안맞는 '수사'로만 내버려둔다는거....

참.....이상도 하지......
나라면 과도한 ..필요이상의 '거창'하고 '성대'한 '장례의식'을 행함으로서
오히려 '노 대통령의 지지 세'를 흡수하려 할 터인데...

무슨 '삼류 드라마'에 나오는 '복수전'처럼 당대에 '끝'을 보아야 후련해진다는
'쫌팽이' 새키 ...그걸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보고 있음에....난,,,아프다...가슴이..


참 공교롭고 두려운 이야기다. 과연 그날 거기서 어떤 '상황'이 있었을까?


그럼.... 이 사람들이 발견했다는 '저 물체'는...





우리가 그간 그리 알고있던 '그 상의 '가 맞을까?

저것이 '상의'라고 알고 있는 지금도 ...
증거물을 이동시키는 저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보고 있는 상황인데..
더구나...'섬유흔'은 노 대통령 옷이 아니라고 하더만...
그 '상의'가 아닌 다른 물체의 '섬유흔'......'포대'의 '흔적;이라면...


이야기는 ....더 복잡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