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6일 금요일

노무현 사망을 기다렸던 경호원들?

노무현 사망을 기다렸던 경호원들? [통일소망 (aspireu) 07.30 09:30 ]

최종각본 :
2-사. ~ 06:52 신 경호관에게 전화하여 “이 모씨가 결혼한 잔디밭 공터로 차를 대라”고
2-아. 공터에 도착하여 대통령을 자리에 눕힌 시점에, 06:56 경호동을 출발하여 또 다른 이 경호관이 몰고온 그랜저 차량

8-가. 문 비서관은 07:00, 이 경호관으로부터“대통령께서 미끄러져 많이 다치셨습니다.”라는 연락을 받고 세영병원에 도착하여

출처: 故 盧 투신 현장조사, 경호관 또 거짓진술 뉴스한국 사회
세영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 2분에서 4분 사이일 것으로 보인다. 경찰에 따르면 세영병원 응급실 차트에는 노 전 대통령이 도착한 시간을 7시 4분으로 기록돼 있고, 당시 의사는 7시 2~3분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출처: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의식불명 상태 병원에 서울신문 사회 2009.05.23 (토) 오후 10:48
피범벅에 사지가 으스러진 노 전 대통령이 세영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이날 오전 7시쯤. 구급차가 아닌 경호실 차량에 비서진과 경호팀이 동승해 이송했다.

노무현대통령님의 찾고 있는 줄 알던 경호관은 차를 출발 시키는데 4(11)분이 걸렸습니다.
05월 27일 발표에 따르면
오전 6시45분께 현장 도착즉시 전화해 "사고가 발생하였으니 차대라"라고 한 뒤
- 차량 출발시간이 11분 후에 이루어짐

문용욱비서관은 연락을 받은 후 2~3분 만에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누가 문제입니까?
2~3분 만에 병원에 도착한 문용욱비서관이 준비 중이었습니까?
아니면 긴급 상황에 처해있던 사저 경호동경호관들이 잠자고 있었습니까?

아니면 무슨 마무리할 일이 있었습니까? 이미 06시 17분 최초 보고가 있었고
06시 20분부터는 비상상황이 되어 있어야합니다.

최종각본 2-마. ~ 06:17 자신의 휴대전화로 사저경호실에 근무중인 신 경호관에게 “심부름 다녀온 사이 대통령께서 보이지 않는다.

출처: 뉴시스 사회 2009.05.27 (수) 오후 7:49
-다른 경호관들 몇시에 사저에서 나왔나?
"오전 6시20분이며 사저 북쪽으로 간 것이 확인됐다."
-사저 CCTV 기록인가?
"예."

출처 : [CBS특별취재팀 정보보고] 2009-05-27 오후 7:14:27
- 다른 경호관은 몇시에 나왔나?
= 06:20분쯤 사저 뒤쪽으로 올라가는 걸 확인했다.



蛇足. - 비서관에게 무전연락
-- 유서 발견 경위는.
▲ 수행 경호관이 사고 직후 무전 등으로 문모 비서관에게 연락했고 문 비서관으로부터 다시 연락받은 박모 비서관이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유서를 처음 발견했다.

2009년 7월 2일 목요일

투신 시간이 그 시간이 된 이유 - 네티즌 또잉님의 글입니다.

3분만에 산길 500미터를 뛰어갔다 왔다는 사실
경찰의 실측 결과 젊은 경찰이 2분43초만에 뛰어 갔다 왔으므로 당시 경호관도 그렇게 했으리라는 가설은 의문의 여지가 많다
경호원의 나이는 45세이기에 본인이 직접 뛰어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전에는 믿기 어렵다. 게다가 현장검증시 본인이 현장에 있었음에도 젊은 사람이 대신 검증을 하고 본인이 시연하지 않았으니 더욱 믿기 어럽다.
경호원 본인이 3분 이내에 뛰어 갔다 올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데 3분 안에 왕복이 가능하다면 그건 젊은이도 전력질주를 하였을 때 가능한 것인데 당시 고인이 정토원 원장이 있는지 보고 오라는 사소한 심부름을 완수하기 위해 그렇게 전력질주를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 경호관은 자신의 진술에 의하면 고인을 잃어버려 이리저리 찾아다니는 와중에도 등산객과 함께 30미터를 걸으며 담소를 나눌 정도로 침착했다.
어쨌든 무슨 이유로든 전력질주를 해서 3분만에 정토원에서 원장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왔더니 경호해야 할 고인이 보이지 않았다면 그 주위에 있는지 찾아보기라도 하고 찾을 수 없다는 것이 확인 된 이후에 동료경호관과의 연락을 취했을 것이다. 통화내용도 “놓쳤다‘ 안 보인다.” 로 찾아 봤는데 찾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모든 일이 3분 안에 이루어졌다고는 믿을 수 없다.

경호원은 노 전 대통령이 떨어진 시간을 네 번을 바꿔 진술했다
처음엔 6시30분 이후 잠시 시선을 돌린 틈에 고인이 뛰어내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그 전에 경호원이 혼자 있는 것을 목격한 증인이 여러명 나타나면서 그 진술은 신빙성을 잃었다
두 번째 6.14에서 6.17 사이에 정토원에 다녀오는 사이에 투신했다고 진술했다
---이 진술은 최종 진술과 일치한다
그러나 또 진술을 바꿔서 6.20 이후에 등산객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고 오는 사이에 투신했다고 했다
---3분 사이에 500미터의 산길을 왕복하고 고인을 찾아보고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한다는 것이 본인 생각에도 가능성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진술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 시간도 바뀐다
네 번째이자 최종적 투신시간에 대한 진술은 두 번째와 같은 6.14~6.17이 된다

왜 6.14~6.17이 고인의 투신시간이 되었을까?
그 외의 시간에 투신했다면 다른 여러 목격자의 진술과 정황증거와 심각한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부엉이 바위 위에 있는 고인을 봤다는 초병의 목격시간을 6.10으로 바꿔가면서까지 6.14~6,17을 투신시간으로 정한 것일 것이다

즉 고인이 투신했다면 그것이 가능한 시간대는 6.14~6.17밖에 없는 것이고 그 외의 시간에 고인이 죽었다면 그것은 타살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2009년 7월 1일 수요일

의문사 - Nicholas님의 글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82385)

전임 대통령이 '서거'되는 나라.
그 '서거'가 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국민'들은 알 수도 없는 나라.
'조문'과 '추도'하는 '국민'이 견찰군화발에 짓 밟히는 나라.

지금 우리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읍니다.

그 '분'이 떠나신지 보름이 다가와도 '돌아가셨다는 사실'이외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견찰에서는 90여명의 특별수사본부를 꾸리고 수사한다고 하나
발표할 때마다 달라지는 '수사내용'에 그 신뢰성을 상실한지 오래입니다. 더구나 수사
결과가 일개 범부가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않는 엉성한 내용으로 점철되어감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감정을 넘어 이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모두가 '역사'앞에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읍니다.

아래의 내용은 '허위사실'을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 철저했을 견찰의 수사결과를
공식적으로 중간중간 발표함에 있어 상식적인 차원에서 이해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함이며, 그러므로 더더욱 철저한 수사를 통해 '후대'에 가서도
그 누가 수사결과에 대해 토를 달 수 없이 공명하고 정확한 '사건경위'를 밝혀달라는
'국민'으로서의 정당한 요청이기 때문입니다.


본론 ....


어제 견찰에서 '수사내용'에 대해 일부 '발표'가 있었으나, 그 내용에 '의문점'이 있었으며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에 올려져 있읍니다.

▶謹弔◀[보도]내 대가리론 이해안되는 '현장검증'의문점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82385)


지금 가장 '의문스러운 점'은 '현장'에 '핏자욱'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발표된 내용대로라면 노 대통령께서는 추락후 '약 37분가량' 방치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37분동안 머물렀을 자리에는 (보도내용에만 의하면) 발견되었다는 '혈흔'이 거의없고
따로 (신발한짝과 함께 발견된) 발견된 " 상의에는 피가 많이 묻었고 바지와 경호차량 안에도 피가 묻었다" 고 한다.

여기서 '발표내용'을 그대로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37분간의 방치시는 "혈흔이 고일 정도의 양은 아니고 낙하로 뚝뚝 흐를정도" 인데
산아래로 이동시에는 " 상의에 피가 많이 묻어있고 바지와 경호차량안에도 묻었다"
"상의에 피가 묻은 것은 이송과정시 후두부에서 흐른 것이다" 라고 발표했다.

'묻은 것' 이라 표현 함은 '다량의 출혈'이 아니라는 말이다. 머리에 11Cm의 열상이
있는 상태에서 37분간 출혈이있었을텐데 '묻을 정도' 만 발견되었다면 말이 되는가?
37분이면 피가 흘러 고인정도 가아니라 응고되었어도 한참 응고 되엇을 것이다.

일단은 여기서 "혈흔이 미진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일차적으로 정리해 두자.

그러면 어떻게 이런 상황이 나올 수 있는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고당시 노대통령께서는 어떠한 '상처'를 받았을까를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부분도 알려진 바로는
언론에 보도된 자료밖에 없으며 각 언론마다 대강의 내용은 비슷하나 매체마다 차이가 있어 전체적으로 자세한 파악은 어렵다. 여러 매체를 종합하는 수 밖에 없다.


정리하면,

1) 정수리부분의 11Cm 열상 과 목부분의 열상 및 출혈
2) 두부골절 (머리 뒷부분이 심하게 손상된 상태)
3) 늑골골절 및 혈흉 (흉막안쪽으로의 출혈 고임 )
4) 양쪽 팔 골절
5) 척주골절 ( 다 부러짐: 어떤 자세여야 다 부러지는지 생각 필요)
6) 골반골절
7) 우측발목 골절

로 요약될 수 있다. 이를 도식화 해본다.



이런 '상황'에 대해 '스포츠조선'은 다음과 같이 '사고당시'를 추정하고 있다.


즉,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앞으로 머리부터 떨어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두부손상'에 있음에 비중을 두었기에 내릴 수 있는 추론이다.

허나.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이 도출된다.

머리가 아래로 향하고 낙하하였을 경우를 가정할 때 '고인'의 타격부위가 언밸런스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점이다.

1) '머리부분'이 먼저 '착지'하게 되었을 경우에는 '목뼈'가 온전할 리가 없다. 적어도
상체와 동시에 비스듬히 '착지'할 경우를 가정한다면 어깨뼈 (가장 약한 쇄골) 가
온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머리부분이 먼저 '착지'한 상태는 아니다.
사인의 직접적인 요인이 '두부골절 내지 골절로 인한 2차병변'이겠으나 이 부분이
낙하시 '가장 먼저 발생된 충격'이라는 정황은 없다. 만일 목뼈의 골절 내지 탈골
이상의 증상이 함께 발견되었다면 모를까 '단순한 복합골절'과 '열상'만으로는 1차
충격부위가 머리라는 것을 입증하지는 못한다.

2) '머리부분'으로 '착지'하고 뒤이은 2차,3차 충격으로 기타부위의 골절이 일어날 수
도 있을까? 인체의 탄성계수의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으나 1차 착지시 접지충격의 80% 이상은 인체가 흡수할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다시 튀어올라 내리 떨어져서
2차 충격이 기타부위에 골절을 야기시킬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대부
분의 '골절'은 '1차착지 충격'에 의해 발생된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한 면을 고려할 때, 고인의 '타격 상태'는

3) '고인'의 '타격상황'을 고려할 때 '착지자세'는 등을 바닥으로 머리에서부터 골반
부위까지 동시에 떨어져 '접지'된 상태 로 보인다. 이럴 경우 머리/늑골/ 척추
및 골반골절이 동시에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엔 양팔과 발목의 골절까지
설명되지는 않는다. 만약 1차 충격후 상당한 거리를 두고 다시 낙하하여 2차/3차
충격이 있었을 경우에는 구르는 회전력이 더해지면서 발목이나 팔이 골절이 일어
날 수 있겠지만 보도된 사진내용으로 볼 때 2차/3차 접지지점을 나타낸 노란
깃발의 주변을 보면 수풀에 덮여있어서 그 개연성은 상당히 떨어진다.

4) 머리의 '열상' 또한 약간 설명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 대개의 경우 바위나 땅에
머리를 부딛힐 경우에 발생될 수 있는 상처는 '열상'이 아닌 '찰과상'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부딛히는 단면적만큼 피부가 이까래지면서 벗겨지며 일어나는
'상처'이지 예리한 부분과의 접촉에 의해 '찢어지는' 상처는 아니라는 것이다.
3) 항의 상황을 고려할 경우 설명이 어려운 이야기이다.

5) 여기까지의 '추론'으로만 보면

ㄱ) 머리부분의 '열상'은 '낙하시의 충격'이 직접적 원인은 아니다.
ㄴ) 고인의 '1차 충격'시에는 머리/가슴중 한 방향부분 (거의 오른쪽 가슴)/
등판/ 골반 (엉덩이) 부분이 동시에 '착지'한 것으로 보인다.
ㄷ) 양팔과 우측빌목의 골절은 '직접적인 1차 충격'에 의한 것은 아니다.

정도가 정리될 수 있다.

내가 무슨 '법의학자'도 아니고, 더군다나 실제 '시신상태'를 확인한 사람도 아니면서
제한적으로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만을 토대로 여러가지로 가정을 하고 상황분석을 해 보지만, 일반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어디에서든 이해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그 부분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고인'의 '화장'전에 부검이 어려우면 '생활반응'만이라도 확인했었더라면 이러한
의문은 '추론'할 필요조차 없었을텐데.....참으로 안타 깝다...그럴만한 사유가 있었을 것이라 본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더 이상의 자세한 자료없이 '추론'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나 혼자만의 '의문'으로 남겨둘 요량이었다. 그거야 내 '자유'이니까 비난받을
하등의 이유도 없고 나혼자만의 '생각'차원이니까 아무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오늘 아침 이글을 보게된다.


노통이 자살했다고 믿는자는 ...이글을 읽지마라..!!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83681 )

글 내용 중 나오는 부분...


이 내용....그간 왕왕 '아고라'에 올라오는 내용이었고 나도 일차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오늘 아침 위에 적은 내용을 생각을 하다가 이 글을 보니까 모든 의문'이 풀리는 듯 싶었다.

혈흔이 1차 착지지점에 거의 없는 이유....'착지순간' 다발성 골절이 동시에 일어나게 된 이유...양팔과 발목에 골절이 나타난 이유.....두정부에 열상이 나타나게 된 이유...

모든 것이 이 '상황'을 대입하면 아주 자연스러이 설명이 가능해진다는 사실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는가? 일일히 설명이 필요하신가?

가정해보라..'포대에 구부리고 들어가있는 상황'에서 45m고공에서 던져진다면?

자유로운 신체는 탄성계수가 낮지만 둥글게 뭉쳐져 있는 신체는 마치 공처럼 탄성계수가 증가된다는것은 기본적인 자연법칙이다. 그런 신체적 통제가 가해진 상황하에서는 신체의 후면부위가 동시에 '착지'되기가 더욱 쉬워진다는 점은 여러분도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 '1차 충격'후 다시 튕겨 회전하며 그 아래의 지면 혹은 바위와의 2차 접촉부위가 '가슴을 감싸안은 팔 부위'이고 다시 튕겨 비약하며 내리
떨어져 부딛힌 그 다음 '3차 접촉' 면이 '우측 발목'부분이었다면....
'손상부위'에 대한 설명이 아주 간단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은 신체가 자유로운 상태에서의 낙하시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양손의 골절이 단 한번에 자연스럽게 설명되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이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윗글을 참고로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시라..

"만약 '두정부'의 열상'이 '추락'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상처 " 라면?
분명히 위의 '기사내용'에서 자세히 나온다.


'머리 정수리부분에 11Cm의 열상'
'머리 뒷부분이 심하게 손상된 상태'



이건 '별도'의 '개별적인 '상처이다.
이 두가지 '상흔'이 '1차 접지 충격'시에 동시에 발생된 '상흔'으로 볼 수 있을까?


(아래는 잠시 '광고말씀' - '드래그 하시면 보입니다. )

'아고라'에 들어오시는 '의료계' 분들 ...한 두분 아니시자나요...
님들께서 전면에 나서기 어렵다는 현실 ...이해 합니다...
그래도.....
이런... 저의 의견에 ' 기다 아니다' 토만이라도 달아주시면 안되나요?

님들의 '일침'이 없으시면 잘못된 '추론'은 계속 잘못된 방향으로만 갑니다.
님들께서 지적해주시는 '한마디'에 말 안되는 많은 '개연성'이 사라지며 조금 더
'현실'에 가까운 의견들이 개진될 수 있읍니다.....'협조' 부탁드릴께요...꾸벅...

(광고 끝 !)


물론 여기까지는 자세한 자료가 없이 알려진 '보도'자료'만을 통한 '추론'일 뿐이다.
그러나 '추론'만일지라도 '언밸런스'하다는 것을 충분하게 '인지' 할 수는 있다.

천에 만에 하나... 저 '두정부'의 '열상'이 가장 먼저 발생된 '상흔'일 경우....
'추락'과 관련된 모든 상황은 어찌 돌아가는 것인가?

내가 5월27일날

▶謹弔◀ '부검'이 정히 어려우시면 제발 이렇게라도 해주세요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23801)

라는 글을 통해 간절하게 바랬었다..... 이런 경우의 '증거 보존'을 위하여...

간단하게 확인할 수있는 몇 가지 '생활반응'만 하였더라도 지금 이런 '추론' 자체가
전혀 필요없을텐데 말이다...

MB정권....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일반인들도 이럴 경우는 '나 아냐.' ...'난 절대 아니야' 하며 히려 '사건과의 연관성'이 없음을 밝히려고 "결백'을 증명하려 꺼꾸로 '부검'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과다할만큼 '조사'를 하려하고 해야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세상사는 사람들의 일상인데...

참...이상하게도....아무런 그 '뭐'가 없다는거....
'견찰'....그들의 말이 안맞는 '수사'로만 내버려둔다는거....

참.....이상도 하지......
나라면 과도한 ..필요이상의 '거창'하고 '성대'한 '장례의식'을 행함으로서
오히려 '노 대통령의 지지 세'를 흡수하려 할 터인데...

무슨 '삼류 드라마'에 나오는 '복수전'처럼 당대에 '끝'을 보아야 후련해진다는
'쫌팽이' 새키 ...그걸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보고 있음에....난,,,아프다...가슴이..


참 공교롭고 두려운 이야기다. 과연 그날 거기서 어떤 '상황'이 있었을까?


그럼.... 이 사람들이 발견했다는 '저 물체'는...





우리가 그간 그리 알고있던 '그 상의 '가 맞을까?

저것이 '상의'라고 알고 있는 지금도 ...
증거물을 이동시키는 저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보고 있는 상황인데..
더구나...'섬유흔'은 노 대통령 옷이 아니라고 하더만...
그 '상의'가 아닌 다른 물체의 '섬유흔'......'포대'의 '흔적;이라면...


이야기는 ....더 복잡하게 된다..

2009년 6월 30일 화요일

1차 조작질 CCTV





이 속에 답이 있습니다.

많은 자료가 들어 있습니다.

보고 또 보세요.

2009년 6월 22일 월요일

2009년 6월 20일 토요일

부엉이바위엔 각이 안나옵니다. (반박검증 해주세요.)

그 누군가가 노무현대통령님을 추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경호원이 노무현대통령님을 찾아 다닌 것이라면
어떻게 해도 경호원은 노무현대통령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추격하고 있지 않았다면


















사진의
부엉이바위 정상지점에 선 사람이 나무아래에 계셨던 노무현대통령님을 보려면
붉게 표시된 직선의 시야각이 확보되야 할 것입니다.


가능합니까?




검정색 점선 표시가 등산로에서 숲속으로 들어간 부분입니다.
등산로에서 현장에 계셨던 노무현대통령님이 보이려면 검은 점선의 곡선시야각이 아니라
푸른색 직선의 시야각이 확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부엉이바위에 가려 불가능합니다.

검은점선으로 접근을 하기 전 알고 있었습니까? 어떻게

그 누군가가 노무현대통령님을 추격하고 있지 않았다면
현장에 누워계셨던 노무현대통령님을 볼 수 있는 시야각이 나오지 않습니다.

노무현대통령님을 추격하고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된거라 바꾸어야 드릴까요?
하나. 노무현대통령님이 "저 여기 있습니다."라고 하셨다.
둘. 노무현대통령님이 그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의리남아
오늘 부엉이바위 등산로입구 폐쇄된 부근과 부엉이바위 밑 추락지점 부근에서 30여분 동안 유심히 관찰하였으나 부엉이바위입구 폐쇄된 등산로부근에서는 노대통령님이 추락하였다는 부엉이바위 아래부분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통일소망님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06/11 17:48:45 (118.xxx.244.69)

결정적인 타살의 증거가 은페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타살의 증거가 은페되고 있습니다
코가막혀 (shim1002) 06.20 04:47

노대통령의 정수리타박상이 사인이라했는데 노대통령의 정수리가 찍힌 바위가 안나왔다는것은 무엇을 의미 합니까?
타살장소가 따로 있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경찰은 이부분을 양측면과 정면 확대사진을 정확하게 공개하여 밝히시요
첫째 혈흔이 나와야 하는데 추락장소에 혈흔이 없다 라는것이 타살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혈흔이란 비누로 빨아도 형광램프로 비추면 나타나게 되어 있거든요



통일소망
코가막혀님
경찰이 바위도 새로 만들지 모르겠습니다.
06/20 06:18:13 (75.xxx.223.175)



천민
통일소망님..
저는 이런 부분에서..
아무리 강심장이라 하더라도
자살하러 가는 발길에 잡초를 뽑았다???
심리적으로 가능할까요?
06/20 07:03:14 (220.xxx.197.11)



1954
불가능합니다! 자살하려고 집을 나서는 사람이 잡초를 왜 뽑습니까? 잡초따위는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본인이 겪어봐서 아는데 자살할 사람은 절대 잡초 따위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잡초 뿐만이 아니라 세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06/20 09:54:02 (124.xxx.136.141)



산골나그네
팔순의 노모께서도 이 부분을 강력히 문제삼으셨습니다. 자살하러간다? 잡초가무성하다? 설혹 일부러라도 잡초들에게 다가갔다면,오히려 만져준다합니다. 그래 생명이지하면서...다시는 너희들을(잡초일망정) 만져볼수가 없구나...하면서, 이건,여기서부터 완전히 말도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요,눈에 보일리도 없었을 것입니다.또....
06/20 15:13:18 (110.xxx.34.100)




코풀자
1954님, 산골나그네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무지랭이인 저가 생각해도 자살하러 가는 사람이 잡초를 뽑을 리가 없습니다.
차라리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며 위로했을 것입니다. 사랑하고 싶다고...
06/20 15:22:11 (118.xxx.63.98)

2009년 6월 19일 금요일

그들이 발견했다는 노무현대통령님 유서 전문과 인터넷 수정본


사는 것이 힘들고 감옥같다.
나름대로 국정을 위해 열정을 다했는 데 잘못됐다고 비판받아 정말 괴로웠다.
지금 마치 나를 국정을 잘못 운영한 것 처럼 비판하고
지인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부정부패를 한 것 처럼 비춰지고
가족, 동료, 지인들까지 감옥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게 하고 있어 외롭고 답답하다
아들, 딸과 지지자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퇴임 후 농촌마을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 데 잘 되지 않아 참으로 유감이다.
돈 문제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만, 이 부분은 깨끗했다.
나름대로 깨끗한 대통령이라고 자부했는데
나에 대한 평가는 먼 훗날 역사가 밝혀 줄 것이다.
(정부와 언론에서 삭제한 전문 내용)

언론과 정부에서 공개한 유서 후문 내용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이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수정본입니다.
뉘앙스로 재구성한 노무현 유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지?
너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지?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지?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지?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지?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지?
그러니 네가 죽임을 당해도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미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죽임을 당해도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이것도 다 네 운명이다.

화장해주마.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 남겨주마.
오래 전부터 계획해 온 것이다.


















진실은 무엇일까요?
저는 유서전문이라고 검색을 하다가 아래 글을 보았습니다.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
조선일보를 욕할 게 아니다. 의혹이 나오면 바로 사실로 믿어버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명박이 그것을 만들어냈지만 노무현이 부끄러워서 죽은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거기에 동조했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노무현이 정말로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렇게 사람들이 자기편이 아니라 자기가 죄를 지었다고 믿는 이명박의 편에 서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자기를 믿어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


감추려고하는 의문이

저들에 의해 감추어질 수 없는 의문이

합리적으로 이해시켜질 때 비로소 다음을 말할 수 있겠지요.
아직은 결론을 단정 짓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MBC는 등산객의 실체를 말해주세요.

목격자 들이 있었다면 그때 노무현대통령님이나 경호원의 표정은 어떠했는가?
경호원만 목격했다면 경호원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가?
등등의 것들이 중요한 내용의 것입니다.


아래 방송된 것에 대한 사실을 추가 방송해주시길 바랍니다.
◀ANC▶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 직전에 혼자 있었다는 경호관의 진술이 확보됐습니다.
목격자들의 증언도 이어지고 있는데 경찰의 재수사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중계차 연결해 보겠습니다.
장 영 기자, 전해 주십시오.
◀ 기 자 ▶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할 당시 경호관 이 모씨는 현장에 없었다는 MBC 보도가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경찰이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일인 23일부터 어제까지 세 차례 이 씨에 대한 조사를 통해 얻은 결론입니다.



◀VCR▶
어제 3차 조사에서 이씨는 등산객이 오는 것을 보고 전 대통령에게 위해가 될 것을 우려해산 아래로 보낸 뒤 와보니 노 전 대통령이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줄곧 동행했다는 1차 조사때 진술과 정토원에 심부름하는 사이 노 전 대통령을 놓쳤다는 2차 진술에 이어 나온 새로운 진술입니다.
어쨌든 경호관 이씨는 2차, 3차 조사 때부터 노 전 대통령의 투신을 막지 못했다고 시인한 셈입니다.
비슷한 시간에 노 전 대통령과 경호관을 봤다는 목격자도 한 둘이 아닙니다.
마늘 밭에서 일을 하던 주민 박모씨를 시작으로 6시 30분 전후로는 봉화산 정토원에서도 노 전 대통령과 경호원이 목격됩니다.
이보다 앞선 6시 20분쯤에는 등산로에서 리시버를 낀 경호원과 30미터 정도를 함께 걸었다는 등산객의 진술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 서거 관련 수사가 처음부터 부실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증거 확보부터 다시 해야할 경찰은 수사 과제가 한 둘이 아닙니다.
경호관이 '놓쳤다' "보이지가 않는다'과 같은 내용이 담겨있는 무선교신 기록과 사저 CCTV도 분석이 필요합니다.
15분 만에 투신한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하고 경호원과 차량을 불러 4킬로미터 가량 떨어진병원으로 옮긴 과정도 풀리지 않는 의문입니다.
유서를 처음 발견할 당시의 정황은 수사 착수도 하지 못했습니다.
경찰은 뒤늦게 전면 재조사 방침을 세우고 현장조사와 함께 목격자를 수소문하고 있습니다
어제 갑자기 취소했던 3차 브리핑은 오늘 중으로 다시 열기로 했습니다.
수사본부에서 MBC 뉴스 장 영 입니다.

2009년 6월 18일 목요일

안양교도소 ‘盧 전 대통령 독방’ 극비 준비 파문

안양교도소 ‘盧 전 대통령 독방’ 극비 준비 파문
안양교도소가 고 노 전 대통령의 구속 수감에 대비해 독방을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는 검찰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OBS(경인TV)는 18일 저녁 메인뉴스 ‘OBS 755’에서 “안양교도소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구속 입감에 대비해 특별팀(TF)을 구성하고, 극비리에 독방을 만들려했던 것으로 취재 결과 드러났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안양교도소는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은지 보름 가량 지난 시점이자 서거 일주일 전 쯤이었던 지난 달 중순, 보안관리과 ㄱ모 교도관을 팀장으로 5~6명의 TF를 구성했다. 교도소 쪽은 6.6㎡의 독방시설로는 노 전 대통령을 수용하기 어려워 20㎡의 새로운 독방을 만들 계획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통상 대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관할인 서울구치소에 입감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경우 형 노건평씨와 측근인 정상문 전 비서관이 서울 구치소에 수감돼있어 이들과 분리 수용하기 위해 안양교도소를 택한 것”이라고 밝혔다고 방송은 전했다.
방송은 이어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에 보도된 검찰 방침은 애초부터 불구속 기소였다”며 “(보도가) 사실이라면 검찰이 불구속을 검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법무부는 구속을 상정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법무부가 검찰 지휘권을 행사하려 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대목”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안양교도소가 법무부 교정 본부 산하인 점 등에 비춰 검찰의 노 전 대통령 수사 논란은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한편 법무부는 19일 해명자료를 통해 “안양교도소에 사실 관계를 확인한 바 특정사건(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해 TF팀을 구성하거나 독방 준비 등 수용에 대비한 사실이 없었다”고 OBS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경향닷컴

경찰이 사실을 숨겨줄 것을 요구했다 - 매경뉴스

알고도 덮은`최후의 25분`진실은?
盧 전대통령 경호관, 정토원장에게 고백 사실 밝혀져…盧 전대통령 한동안 응급상태 방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 당시 경호관인 이병춘 경호과장이 사건 다음날인 24일 노 전 대통령의 지인에게 괴로워하며 "대통령 곁을 지키지 못했다"는 내용의 `고백`을 했던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지인은 이 같은 사실을 경찰에 알렸으나 경찰은 이를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선진규 정토원장(75)은 매일경제 기자와 만나 "사건 발생 다음날인 24일 이 경호관이 전화를 걸어와 괴로운 심정을 토로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내용을 선 원장은 24일 봉하마을에서 이운우 경남지방경찰청을 만나 이야기했다. 이는 지금까지 수사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사실이다.

선 원장에 따르면 사건 당시 부엉이바위에서 노 전 대통령이 "정토원장 계시는지 확인해 봐라"고 지시했고 이 경호관이 "모셔올까요"라고 묻자 "그건 됐고 그냥 확인만 해라"고 재차 지시해 이 경호관이 정토원으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이 경호관은 이 같은 사실을 사건 다음날인 24일 선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고백했다.

문제는 이런 사실을 선 원장이 바로 경찰에 알렸으나 경찰은 이 같은 사실을 당분간 숨겨줄 것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선 원장은 "경찰에 `언론에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종합수사 결과 발표 때까지 자제해 달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는 경호관의 진술 번복이 있기 전까지 노 전 대통령과 경호관이 함께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경찰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따라서 경찰이 선 원장의 제보를 받고도 왜 이 같은 사실을 숨겼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경찰은 이날 "이 경호관이 대통령 심부름을 받고 출발한 시간이 오전 6시 14분께부터 이 경호관이 사저에 있는 또 다른 경호관에게 노 전 대통령의 추락을 확인하고 차를 대기시키라고 전화한 시간이 6시 45분이므로 31분간 경호를 받지 않고 홀로 계셨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남경찰청은 27일 2차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과 함께 6시 10분께 부엉이바위 정상에 도착해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 부엉이가 사나` `담배 있느냐` 등을 묻고는 `정토사에 선법사가 있는지 보고 오지`라고 했고 `모셔올까요`라고 묻자 `아니, 그냥 확인만 해봐라`고 해 바로 정토원으로 뛰어갔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 경호관이 정토원을 들러 부엉이바위로 돌아오니 노 전 대통령이 이미 뛰어내렸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은 한동안 응급상태에서 혼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이 같은 사실을 이 경호관이 진술을 번복하기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남청 관계자는 "이운우 청장이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제보까지 받고도 이처럼 중요한 사실을 숨기려 했는지에 대한 해명은 하지 못하고 있다.

사고 발생 직후 경찰 태도도 의문스럽다. 경찰은 장례 이전에 이 경호관을 대동한 현장 검증을 전혀 하지 않았고 수사 결과 발표도 장례 이후로 미뤘다. 애초 유서 발견에 따라 `자살`로 결론 내리고도 굳이 일주일씩이나 끌며 현장 검증과 수사 결과 발표를 미룬 데는 말 못할 사정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지적이다.

"놓쳤다. 사라졌다" 등 사건 발생 직후 무전 기록 내용도 사건이 발생한 지 3일이 지난 이후에야 확보해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담배 있느냐" "가져올까요" 등 노 전 대통령과 이 경호관이 나눈 대화의 실제 유무도 의문투성이다. 고위직 경호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는 한 경호 관계자는 "경호원이 그런 상황에서 `가져올까요`라고 답할 가능성은 없다"며 "경호 업무자는 휴대폰처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어 상식적이라면 `가져오라고 할까요`라고 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사건이 확산되자 "전직 대통령 경호팀은 형식과 직제상만 경호처에 속해 전혀 별개로 움직인다"고 밝혔다.
[김해 = 이지용 기자 / 곽승규 기자]

'미스터리'로 남게된 풀리지 않은 의문들 MBC

◀ANC▶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경위에 대한 수사가 여러가지 의문을 남긴채 현장검증을 끝으로 사실상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결국 '미스터리'로 남게된 풀리지 않은 의문들, 정영민 기자가 되짚어봤습니다.

◀END▶
◀VCR▶

**3초소 목격 못했나?
노 전 대통령이 경호관과 함께 부엉이 바위 위에 서 있는 모습이 사저 뒤편 3초소에서 목격된 시각은 6시 10분.
3초소는 부엉이 바위 부근을 집중 감시하는 곳인데다 대통령이 목격돼 눈을 떼서는 안 되지만 초소 근무자는 10분도 안되는 노 전 대통령의 투신 장면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습니다.
◀INT▶
김한수/ 경남경찰청 강력계장

**정토원 들렀나?
정토원의 한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일인 지난 23일,
새벽 6시 30분 전후 노 전 대통령의 뒷 모습을 분명히 목격했다고 수 차례 증언했습니다.

◀INT▶
정토원 관계자그런데 경찰 수사가 이뤄지자 이 관계자는 증언을 번복해 목격사실을 부인했습니다.

**유류품 왜 공개 안하나?
경찰은 부엉이 바위 밑에서 노 전 대통령의 등산화와 양복 상의를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산에 오르기 전 만난 마을 주민은 등산복을 입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INT▶
박영철 /마울주민

**무전기 사용 왜 안했나?
경호관 이씨는 노 전 대통령이 사라진 뒤 찾는 과정에서 30여분동안 무전기 대신 휴대전화로 다른 경호관과 통화를 했습니다.
피경호자가 보이지 않은 긴급한 상황에서 버튼만 누르면 교신할 수 있는 무전기를 갖고 있으면서 사용하지 않은 점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MBC뉴스 정영민입니다.

CCTV조작 반박 자료 02

노무현 의문사: 또 다른 기록, 경찰의 CCTV와 비교

일부 분들이 CCTV의 화질 때문에 칸막이의 바람구멍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하시니 다른 자료로 반박하겠습니다.

제 입증자료에 동의하시면 MBC로 제보바랍니다.저 혼자는 부족합니다.


사진1
연합뉴스에서 2009년 5월 12일 촬영한 사진입니다.












아래는 일반인이 노통 서거 후인 5월 24일에 같은 곳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사진2
위 사진 좌측 아래의 경호동건물 처마를 기준으로 사저 지붕까지 실선으로 표시해 보겠습니다.빨간색 원 안에 바람구멍을 잘 보아 두십시오.물론 빨간색 원 우측으로도 바람막이가 끝나는 지점까지 바람구멍은 계속 있습니다.












사진3
이해를 돕기 위해 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이 사진은 5월 이전(3~4월 사이)에 찍은 것입니다. 칸막이 어디에도 바람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진4
경찰이 공개한 CCTV의 한 장면입니다.노통이 사저를 나서 맨 처음 풀을 뽑은 위치입니다. 칸막이의 라운드진 부분을 주목해 두십시오.












사진5
이 사진은 노통이 처음 풀을 뽑으신 위치를 위쪽에서 표시한 것입니다.












사진6
당연히 아래사진의 빨간 원안에는 사진 1의 구멍들이 보여야 합니다.그러나 보이지 않습니다.













아래 사진은 반대쪽에서 찍은 CCTV화면입니다.














사진7 (추가)
경찰의 CCTV에 나오는 후반부 장면.칸막이 끝부분에 구멍들이 보일 것입니다.이 구멍은 4월 22일 전후로 먼저 뚫려 있던 것입니다.














사진8 (추가)
2009년 4월 19일 사진사진을 잘 보시면 상단부분까지 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때까지는 구멍이 없었다는 예기.














2009년 4월 19일의 또다른 사진














2009년 4월 22일 사진.
바람막이가 끝나는 부분에 몇 개의 구멍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바로 옆 찬막이 늘어진 부분에는 구멍이 없습니다.이것은 측면에서 강풍이 불어 그 위치만 먼저 구멍을 뚫은 것입니다.














사진9 (추가)
2009년 5월 10일 사진.이 때는 이미 사저 정면에서 불어오는 강풍을 막기 위해 왼쪽방향으로 쭉 구멍을 뚫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론!
사진 3에서 처럼 처음 공사를 시작하여 적어도 사진1이 찍힐 때까지는 칸막이에 바람구멍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강풍이 잦아지자 사저 맨 우측에 있는 바람막이쪽부터 바람구멍을 뚫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사진1의 바람구멍은 분명히 5월 12일에 촬영된 것이니 최대한 양보해도 5월 12일 아침부터는 뚫려 있었다는 예기입니다.
그런데 경찰이 공개한 CCTV(사진4)에는 있어야 할 위치에 바람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건 CCTV영상이 적어도 5월 12일 이전에 촬영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에 문제를 제기했던 제 글에 어떤 분께서 CCTV의 화질 때문에 구멍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이 사진들을 보시면 다른 반박은 못하실 것입니다.
경찰의 CCTV영상은 5월 23일 것이 아닙니다!
경찰은 왜 5월 12일 이전의 CCTV를 5월 23일 것이라 했습니까?
아니라면 전문가들과 함께 CCTV를 분석하게 해주십시오!
by CHE★GALOU 2009/06/07 02:03

CCTV조작 증거 01

9초 장면. 좀 더 선명하게 보기 위해 필터 사용 노이즈 제거했습니다.우측 상단 산 위의 검은 줄을 주목해 주세요.













검은 줄을 자세히 보기 위해 커브 몇방 줘봤습니다. 검은 줄과 박스 모양을 선명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버트로 다시 확인해 봤습니다. 흰 줄로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CCTV 시간 지우기 위해서 편집하신겁니까?
파일변환해서 시간 지워졌다더니만
파일변환하면 이렇게 수작업으로 지운 것처럼 나타나는겁니까?
파일 변환에 사용하신 프로그램 이름 좀 알려주십시오.


경남 경찰청장님,
왜 손을 대셨는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파일 무결성이 손상된 이상 디지털 증거자료로 사용하지 못하십니다.


CCTV 원본 공개하십시오.

출처:아고라 자토방 로진님의 "CCTV 조작 의심 흔적-화면우측 검은 줄"그 분이 서거하신지 10일이 넘었지만, 아직도 뭔가 수상한 부분이 있기에 여기에 적습니다.

경찰의 조작 CCTV



경찰 발표 CCTV 편집본입니다.
물론 조작질된 것입니다.

조선일보와 정보기관의 도청

조선일보가 폭로한 도청 (노무현대통령님 사저에 대한 도청)

이 조합장은 이 매체와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이 등산을 떠나기 전에 깨어 있던 권여사가 “나도 같이 갈까요”라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은 “그럽시다”라고 대답했으나 권 여사가 준비하는 동안 먼저 나가 버렸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인터뷰 내용 인용기사 -

이 장면을 보지는 못하고 기계를 통해 멀리서 음성만 듣고 있었던 사람들은 어떤 결론을 만들었을까요?
그 답은 조선일보기사의 칼라색으로 표시부분을 자세히 보시면 나옵니다.


[속보] 노무현 전 대통령, 봉하마을 뒷산서 투신자살 서거
[조선일보]
2009년 05월 23일(토) 오전 09:14 가 가 이메일 프린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산행 도중 바위 아래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한민국은 헌정 사상 전직 대통령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태를 맞게 됐다.

이로써 향후 정국에 큰 파문이 예상된다.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돼 진행중인 검찰 수사도 전격적인 방향 전환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찰에 따르면 박연차 게이트 와 관련해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온 노무현 전 대통령은 23일 오전 6시50분쯤 자택이 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 뒷산에서 산행을 하던 중 벼랑 아래로 몸을 던졌다.

머리에 큰 상처를 입은 노 전 대통령은 곧바로 김해 세영병원으로 이송됐다. 노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은 후 즉시 부산대 양산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오전 9시30분 숨졌다.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 산행 당시 권양숙 여사도 동행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11시 문재인 전 청와대비서실장은 부산대병원에서 "노 전 대통령이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고 공식발표했다.

문 전 실장은 또 "노 전 대통령은 오전 5시45분께 사저에서 나와 봉화산에서 등산을 하던 중 오전 6시40분께 바위로 뛰어내리신 것으로 보인다"며 "노 전 대통령은 8시 13분께 병원에 도착했으나 상태가 위중해 9시 30분께 서거하셨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사고 직후 자택에서 가까운 김해시 세영병원으로 먼저 옮겨졌으나 이미 의식불명 상태였으며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다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이송했다.

백승완 부산대병원장은 노 전 대통령의 직접 사인은 머리 손상이라고 밝혔다. 백 병원장은 이날 오전 11시 브리핑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은 23일 오전 8시 23분쯤 인공호흡을 하며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도착 당시 의식이 없었고 자가호흡도 없었다"며 "두정부에 11㎝ 정도의 열상이 발견됐으며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회복이 안돼 오전 9시30분 중단했다"고 말했다.

백 병원장은 또 "뇌좌상이 확인됐는데 두부 손상이 직접 사인으로 확인됐다"고 말하고 "이외에도 늑골 골절, 골반 등 전신에 다발성 골절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주변 인사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사저 주변 산책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봉하산의 등산로는 그리 가파른 길이 아니어서 실족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23일은 검찰이 권양숙 여사를 재소환해 조사할 예정이었다. 검찰은 다음주 중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조선일보의 자살골입니다.
이것은 조선이 만든 또 하나의 불후의 명작이 될 것입니다.

그것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신속히 만들어낸
[조선일보] 2009년 05월 23일(토) 오전 09:14


아래 로고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의 것은 자폭의 증거입니다.



- 조선일보 로고
실제로 조선일보닷컴 추모관련 로고 확장자 명은 ‘http://image.chosun.com/cs/gnb/chosun_logo_090522.gif’로 ‘090522’로 2009년 5월 22일로 되어있다.

조선닷컴은 노 대통령 서거에 맞춰 로고를 흑백으로 바꾸고 로고 옆에 국화꽃을 넣었다. 로고 위에는 ´노무현 前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통상 디자이너들이 파일의 관리나 중복을 피하게 위해 파일명을 날짜로 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꼭 파일명이 날짜와 같아야 한다는 규정이나 규칙은 없지만 (조선이 늘 앞서갔으니 )
Click Image to enlarge.

May 23, 2009 Korea






이 동영상이 저에게 의문을 주었습니다.


이 사진이 저의 육감에 글을 적어 주었습니다.


노제 '사랑으로' 백성은 가슴에 눈물 담고 보내드립니다.






yee7121 (2 주 전)
I was so angry to see all what have happened over there but at this moment, I just can't help but moaning. 잘가세요 대통령님, 목숨 붙어 있는 날까지 기억할 님.

노무현대통령님 귀향(歸鄕)



greenteaG
기분 좋다고 하시는데...그리 기분 좋은 봉하마을 고향에서...그리 가셨네요...노통은 영원한 제 영웅입니다. 고인을 추모합니다.

노무현대통령님의 민주화 연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 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습니다. 패가망신했습니다.

육백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생겨도 어떤 비리가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 밝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습니다.
눈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우리 육백년의 역사


자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 아이들의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일어섭시다.
바람 부는 데로 눕는 풀이 아닌
바람에 맞서는 들풀이 되어 일어섭시다.
불의의 바람을 가르는 들풀이 되어 나갑시다.

멸문지화 패가망신을 각오하고 일어서서 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