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30일 화요일

1차 조작질 CCTV





이 속에 답이 있습니다.

많은 자료가 들어 있습니다.

보고 또 보세요.

2009년 6월 22일 월요일

2009년 6월 20일 토요일

부엉이바위엔 각이 안나옵니다. (반박검증 해주세요.)

그 누군가가 노무현대통령님을 추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경호원이 노무현대통령님을 찾아 다닌 것이라면
어떻게 해도 경호원은 노무현대통령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추격하고 있지 않았다면


















사진의
부엉이바위 정상지점에 선 사람이 나무아래에 계셨던 노무현대통령님을 보려면
붉게 표시된 직선의 시야각이 확보되야 할 것입니다.


가능합니까?




검정색 점선 표시가 등산로에서 숲속으로 들어간 부분입니다.
등산로에서 현장에 계셨던 노무현대통령님이 보이려면 검은 점선의 곡선시야각이 아니라
푸른색 직선의 시야각이 확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부엉이바위에 가려 불가능합니다.

검은점선으로 접근을 하기 전 알고 있었습니까? 어떻게

그 누군가가 노무현대통령님을 추격하고 있지 않았다면
현장에 누워계셨던 노무현대통령님을 볼 수 있는 시야각이 나오지 않습니다.

노무현대통령님을 추격하고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된거라 바꾸어야 드릴까요?
하나. 노무현대통령님이 "저 여기 있습니다."라고 하셨다.
둘. 노무현대통령님이 그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의리남아
오늘 부엉이바위 등산로입구 폐쇄된 부근과 부엉이바위 밑 추락지점 부근에서 30여분 동안 유심히 관찰하였으나 부엉이바위입구 폐쇄된 등산로부근에서는 노대통령님이 추락하였다는 부엉이바위 아래부분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통일소망님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06/11 17:48:45 (118.xxx.244.69)

결정적인 타살의 증거가 은페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타살의 증거가 은페되고 있습니다
코가막혀 (shim1002) 06.20 04:47

노대통령의 정수리타박상이 사인이라했는데 노대통령의 정수리가 찍힌 바위가 안나왔다는것은 무엇을 의미 합니까?
타살장소가 따로 있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경찰은 이부분을 양측면과 정면 확대사진을 정확하게 공개하여 밝히시요
첫째 혈흔이 나와야 하는데 추락장소에 혈흔이 없다 라는것이 타살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혈흔이란 비누로 빨아도 형광램프로 비추면 나타나게 되어 있거든요



통일소망
코가막혀님
경찰이 바위도 새로 만들지 모르겠습니다.
06/20 06:18:13 (75.xxx.223.175)



천민
통일소망님..
저는 이런 부분에서..
아무리 강심장이라 하더라도
자살하러 가는 발길에 잡초를 뽑았다???
심리적으로 가능할까요?
06/20 07:03:14 (220.xxx.197.11)



1954
불가능합니다! 자살하려고 집을 나서는 사람이 잡초를 왜 뽑습니까? 잡초따위는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본인이 겪어봐서 아는데 자살할 사람은 절대 잡초 따위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잡초 뿐만이 아니라 세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06/20 09:54:02 (124.xxx.136.141)



산골나그네
팔순의 노모께서도 이 부분을 강력히 문제삼으셨습니다. 자살하러간다? 잡초가무성하다? 설혹 일부러라도 잡초들에게 다가갔다면,오히려 만져준다합니다. 그래 생명이지하면서...다시는 너희들을(잡초일망정) 만져볼수가 없구나...하면서, 이건,여기서부터 완전히 말도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요,눈에 보일리도 없었을 것입니다.또....
06/20 15:13:18 (110.xxx.34.100)




코풀자
1954님, 산골나그네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무지랭이인 저가 생각해도 자살하러 가는 사람이 잡초를 뽑을 리가 없습니다.
차라리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며 위로했을 것입니다. 사랑하고 싶다고...
06/20 15:22:11 (118.xxx.63.98)

2009년 6월 19일 금요일

그들이 발견했다는 노무현대통령님 유서 전문과 인터넷 수정본


사는 것이 힘들고 감옥같다.
나름대로 국정을 위해 열정을 다했는 데 잘못됐다고 비판받아 정말 괴로웠다.
지금 마치 나를 국정을 잘못 운영한 것 처럼 비판하고
지인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부정부패를 한 것 처럼 비춰지고
가족, 동료, 지인들까지 감옥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게 하고 있어 외롭고 답답하다
아들, 딸과 지지자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퇴임 후 농촌마을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 데 잘 되지 않아 참으로 유감이다.
돈 문제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만, 이 부분은 깨끗했다.
나름대로 깨끗한 대통령이라고 자부했는데
나에 대한 평가는 먼 훗날 역사가 밝혀 줄 것이다.
(정부와 언론에서 삭제한 전문 내용)

언론과 정부에서 공개한 유서 후문 내용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이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수정본입니다.
뉘앙스로 재구성한 노무현 유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지?
너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지?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지?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지?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지?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지?
그러니 네가 죽임을 당해도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미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죽임을 당해도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이것도 다 네 운명이다.

화장해주마.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 남겨주마.
오래 전부터 계획해 온 것이다.


















진실은 무엇일까요?
저는 유서전문이라고 검색을 하다가 아래 글을 보았습니다.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
조선일보를 욕할 게 아니다. 의혹이 나오면 바로 사실로 믿어버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명박이 그것을 만들어냈지만 노무현이 부끄러워서 죽은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거기에 동조했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노무현이 정말로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렇게 사람들이 자기편이 아니라 자기가 죄를 지었다고 믿는 이명박의 편에 서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자기를 믿어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


감추려고하는 의문이

저들에 의해 감추어질 수 없는 의문이

합리적으로 이해시켜질 때 비로소 다음을 말할 수 있겠지요.
아직은 결론을 단정 짓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MBC는 등산객의 실체를 말해주세요.

목격자 들이 있었다면 그때 노무현대통령님이나 경호원의 표정은 어떠했는가?
경호원만 목격했다면 경호원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가?
등등의 것들이 중요한 내용의 것입니다.


아래 방송된 것에 대한 사실을 추가 방송해주시길 바랍니다.
◀ANC▶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 직전에 혼자 있었다는 경호관의 진술이 확보됐습니다.
목격자들의 증언도 이어지고 있는데 경찰의 재수사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중계차 연결해 보겠습니다.
장 영 기자, 전해 주십시오.
◀ 기 자 ▶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할 당시 경호관 이 모씨는 현장에 없었다는 MBC 보도가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경찰이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일인 23일부터 어제까지 세 차례 이 씨에 대한 조사를 통해 얻은 결론입니다.



◀VCR▶
어제 3차 조사에서 이씨는 등산객이 오는 것을 보고 전 대통령에게 위해가 될 것을 우려해산 아래로 보낸 뒤 와보니 노 전 대통령이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줄곧 동행했다는 1차 조사때 진술과 정토원에 심부름하는 사이 노 전 대통령을 놓쳤다는 2차 진술에 이어 나온 새로운 진술입니다.
어쨌든 경호관 이씨는 2차, 3차 조사 때부터 노 전 대통령의 투신을 막지 못했다고 시인한 셈입니다.
비슷한 시간에 노 전 대통령과 경호관을 봤다는 목격자도 한 둘이 아닙니다.
마늘 밭에서 일을 하던 주민 박모씨를 시작으로 6시 30분 전후로는 봉화산 정토원에서도 노 전 대통령과 경호원이 목격됩니다.
이보다 앞선 6시 20분쯤에는 등산로에서 리시버를 낀 경호원과 30미터 정도를 함께 걸었다는 등산객의 진술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 서거 관련 수사가 처음부터 부실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증거 확보부터 다시 해야할 경찰은 수사 과제가 한 둘이 아닙니다.
경호관이 '놓쳤다' "보이지가 않는다'과 같은 내용이 담겨있는 무선교신 기록과 사저 CCTV도 분석이 필요합니다.
15분 만에 투신한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하고 경호원과 차량을 불러 4킬로미터 가량 떨어진병원으로 옮긴 과정도 풀리지 않는 의문입니다.
유서를 처음 발견할 당시의 정황은 수사 착수도 하지 못했습니다.
경찰은 뒤늦게 전면 재조사 방침을 세우고 현장조사와 함께 목격자를 수소문하고 있습니다
어제 갑자기 취소했던 3차 브리핑은 오늘 중으로 다시 열기로 했습니다.
수사본부에서 MBC 뉴스 장 영 입니다.

2009년 6월 18일 목요일

안양교도소 ‘盧 전 대통령 독방’ 극비 준비 파문

안양교도소 ‘盧 전 대통령 독방’ 극비 준비 파문
안양교도소가 고 노 전 대통령의 구속 수감에 대비해 독방을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는 검찰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OBS(경인TV)는 18일 저녁 메인뉴스 ‘OBS 755’에서 “안양교도소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구속 입감에 대비해 특별팀(TF)을 구성하고, 극비리에 독방을 만들려했던 것으로 취재 결과 드러났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안양교도소는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은지 보름 가량 지난 시점이자 서거 일주일 전 쯤이었던 지난 달 중순, 보안관리과 ㄱ모 교도관을 팀장으로 5~6명의 TF를 구성했다. 교도소 쪽은 6.6㎡의 독방시설로는 노 전 대통령을 수용하기 어려워 20㎡의 새로운 독방을 만들 계획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통상 대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관할인 서울구치소에 입감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경우 형 노건평씨와 측근인 정상문 전 비서관이 서울 구치소에 수감돼있어 이들과 분리 수용하기 위해 안양교도소를 택한 것”이라고 밝혔다고 방송은 전했다.
방송은 이어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에 보도된 검찰 방침은 애초부터 불구속 기소였다”며 “(보도가) 사실이라면 검찰이 불구속을 검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법무부는 구속을 상정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법무부가 검찰 지휘권을 행사하려 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대목”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안양교도소가 법무부 교정 본부 산하인 점 등에 비춰 검찰의 노 전 대통령 수사 논란은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한편 법무부는 19일 해명자료를 통해 “안양교도소에 사실 관계를 확인한 바 특정사건(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해 TF팀을 구성하거나 독방 준비 등 수용에 대비한 사실이 없었다”고 OBS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경향닷컴

경찰이 사실을 숨겨줄 것을 요구했다 - 매경뉴스

알고도 덮은`최후의 25분`진실은?
盧 전대통령 경호관, 정토원장에게 고백 사실 밝혀져…盧 전대통령 한동안 응급상태 방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 당시 경호관인 이병춘 경호과장이 사건 다음날인 24일 노 전 대통령의 지인에게 괴로워하며 "대통령 곁을 지키지 못했다"는 내용의 `고백`을 했던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지인은 이 같은 사실을 경찰에 알렸으나 경찰은 이를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선진규 정토원장(75)은 매일경제 기자와 만나 "사건 발생 다음날인 24일 이 경호관이 전화를 걸어와 괴로운 심정을 토로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내용을 선 원장은 24일 봉하마을에서 이운우 경남지방경찰청을 만나 이야기했다. 이는 지금까지 수사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사실이다.

선 원장에 따르면 사건 당시 부엉이바위에서 노 전 대통령이 "정토원장 계시는지 확인해 봐라"고 지시했고 이 경호관이 "모셔올까요"라고 묻자 "그건 됐고 그냥 확인만 해라"고 재차 지시해 이 경호관이 정토원으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이 경호관은 이 같은 사실을 사건 다음날인 24일 선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고백했다.

문제는 이런 사실을 선 원장이 바로 경찰에 알렸으나 경찰은 이 같은 사실을 당분간 숨겨줄 것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선 원장은 "경찰에 `언론에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종합수사 결과 발표 때까지 자제해 달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는 경호관의 진술 번복이 있기 전까지 노 전 대통령과 경호관이 함께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경찰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따라서 경찰이 선 원장의 제보를 받고도 왜 이 같은 사실을 숨겼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경찰은 이날 "이 경호관이 대통령 심부름을 받고 출발한 시간이 오전 6시 14분께부터 이 경호관이 사저에 있는 또 다른 경호관에게 노 전 대통령의 추락을 확인하고 차를 대기시키라고 전화한 시간이 6시 45분이므로 31분간 경호를 받지 않고 홀로 계셨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남경찰청은 27일 2차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과 함께 6시 10분께 부엉이바위 정상에 도착해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 부엉이가 사나` `담배 있느냐` 등을 묻고는 `정토사에 선법사가 있는지 보고 오지`라고 했고 `모셔올까요`라고 묻자 `아니, 그냥 확인만 해봐라`고 해 바로 정토원으로 뛰어갔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 경호관이 정토원을 들러 부엉이바위로 돌아오니 노 전 대통령이 이미 뛰어내렸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은 한동안 응급상태에서 혼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이 같은 사실을 이 경호관이 진술을 번복하기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남청 관계자는 "이운우 청장이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제보까지 받고도 이처럼 중요한 사실을 숨기려 했는지에 대한 해명은 하지 못하고 있다.

사고 발생 직후 경찰 태도도 의문스럽다. 경찰은 장례 이전에 이 경호관을 대동한 현장 검증을 전혀 하지 않았고 수사 결과 발표도 장례 이후로 미뤘다. 애초 유서 발견에 따라 `자살`로 결론 내리고도 굳이 일주일씩이나 끌며 현장 검증과 수사 결과 발표를 미룬 데는 말 못할 사정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지적이다.

"놓쳤다. 사라졌다" 등 사건 발생 직후 무전 기록 내용도 사건이 발생한 지 3일이 지난 이후에야 확보해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담배 있느냐" "가져올까요" 등 노 전 대통령과 이 경호관이 나눈 대화의 실제 유무도 의문투성이다. 고위직 경호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는 한 경호 관계자는 "경호원이 그런 상황에서 `가져올까요`라고 답할 가능성은 없다"며 "경호 업무자는 휴대폰처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어 상식적이라면 `가져오라고 할까요`라고 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사건이 확산되자 "전직 대통령 경호팀은 형식과 직제상만 경호처에 속해 전혀 별개로 움직인다"고 밝혔다.
[김해 = 이지용 기자 / 곽승규 기자]

'미스터리'로 남게된 풀리지 않은 의문들 MBC

◀ANC▶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경위에 대한 수사가 여러가지 의문을 남긴채 현장검증을 끝으로 사실상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결국 '미스터리'로 남게된 풀리지 않은 의문들, 정영민 기자가 되짚어봤습니다.

◀END▶
◀VCR▶

**3초소 목격 못했나?
노 전 대통령이 경호관과 함께 부엉이 바위 위에 서 있는 모습이 사저 뒤편 3초소에서 목격된 시각은 6시 10분.
3초소는 부엉이 바위 부근을 집중 감시하는 곳인데다 대통령이 목격돼 눈을 떼서는 안 되지만 초소 근무자는 10분도 안되는 노 전 대통령의 투신 장면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습니다.
◀INT▶
김한수/ 경남경찰청 강력계장

**정토원 들렀나?
정토원의 한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일인 지난 23일,
새벽 6시 30분 전후 노 전 대통령의 뒷 모습을 분명히 목격했다고 수 차례 증언했습니다.

◀INT▶
정토원 관계자그런데 경찰 수사가 이뤄지자 이 관계자는 증언을 번복해 목격사실을 부인했습니다.

**유류품 왜 공개 안하나?
경찰은 부엉이 바위 밑에서 노 전 대통령의 등산화와 양복 상의를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산에 오르기 전 만난 마을 주민은 등산복을 입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INT▶
박영철 /마울주민

**무전기 사용 왜 안했나?
경호관 이씨는 노 전 대통령이 사라진 뒤 찾는 과정에서 30여분동안 무전기 대신 휴대전화로 다른 경호관과 통화를 했습니다.
피경호자가 보이지 않은 긴급한 상황에서 버튼만 누르면 교신할 수 있는 무전기를 갖고 있으면서 사용하지 않은 점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MBC뉴스 정영민입니다.

CCTV조작 반박 자료 02

노무현 의문사: 또 다른 기록, 경찰의 CCTV와 비교

일부 분들이 CCTV의 화질 때문에 칸막이의 바람구멍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하시니 다른 자료로 반박하겠습니다.

제 입증자료에 동의하시면 MBC로 제보바랍니다.저 혼자는 부족합니다.


사진1
연합뉴스에서 2009년 5월 12일 촬영한 사진입니다.












아래는 일반인이 노통 서거 후인 5월 24일에 같은 곳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사진2
위 사진 좌측 아래의 경호동건물 처마를 기준으로 사저 지붕까지 실선으로 표시해 보겠습니다.빨간색 원 안에 바람구멍을 잘 보아 두십시오.물론 빨간색 원 우측으로도 바람막이가 끝나는 지점까지 바람구멍은 계속 있습니다.












사진3
이해를 돕기 위해 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이 사진은 5월 이전(3~4월 사이)에 찍은 것입니다. 칸막이 어디에도 바람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진4
경찰이 공개한 CCTV의 한 장면입니다.노통이 사저를 나서 맨 처음 풀을 뽑은 위치입니다. 칸막이의 라운드진 부분을 주목해 두십시오.












사진5
이 사진은 노통이 처음 풀을 뽑으신 위치를 위쪽에서 표시한 것입니다.












사진6
당연히 아래사진의 빨간 원안에는 사진 1의 구멍들이 보여야 합니다.그러나 보이지 않습니다.













아래 사진은 반대쪽에서 찍은 CCTV화면입니다.














사진7 (추가)
경찰의 CCTV에 나오는 후반부 장면.칸막이 끝부분에 구멍들이 보일 것입니다.이 구멍은 4월 22일 전후로 먼저 뚫려 있던 것입니다.














사진8 (추가)
2009년 4월 19일 사진사진을 잘 보시면 상단부분까지 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때까지는 구멍이 없었다는 예기.














2009년 4월 19일의 또다른 사진














2009년 4월 22일 사진.
바람막이가 끝나는 부분에 몇 개의 구멍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바로 옆 찬막이 늘어진 부분에는 구멍이 없습니다.이것은 측면에서 강풍이 불어 그 위치만 먼저 구멍을 뚫은 것입니다.














사진9 (추가)
2009년 5월 10일 사진.이 때는 이미 사저 정면에서 불어오는 강풍을 막기 위해 왼쪽방향으로 쭉 구멍을 뚫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론!
사진 3에서 처럼 처음 공사를 시작하여 적어도 사진1이 찍힐 때까지는 칸막이에 바람구멍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강풍이 잦아지자 사저 맨 우측에 있는 바람막이쪽부터 바람구멍을 뚫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사진1의 바람구멍은 분명히 5월 12일에 촬영된 것이니 최대한 양보해도 5월 12일 아침부터는 뚫려 있었다는 예기입니다.
그런데 경찰이 공개한 CCTV(사진4)에는 있어야 할 위치에 바람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건 CCTV영상이 적어도 5월 12일 이전에 촬영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에 문제를 제기했던 제 글에 어떤 분께서 CCTV의 화질 때문에 구멍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이 사진들을 보시면 다른 반박은 못하실 것입니다.
경찰의 CCTV영상은 5월 23일 것이 아닙니다!
경찰은 왜 5월 12일 이전의 CCTV를 5월 23일 것이라 했습니까?
아니라면 전문가들과 함께 CCTV를 분석하게 해주십시오!
by CHE★GALOU 2009/06/07 02:03

CCTV조작 증거 01

9초 장면. 좀 더 선명하게 보기 위해 필터 사용 노이즈 제거했습니다.우측 상단 산 위의 검은 줄을 주목해 주세요.













검은 줄을 자세히 보기 위해 커브 몇방 줘봤습니다. 검은 줄과 박스 모양을 선명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버트로 다시 확인해 봤습니다. 흰 줄로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CCTV 시간 지우기 위해서 편집하신겁니까?
파일변환해서 시간 지워졌다더니만
파일변환하면 이렇게 수작업으로 지운 것처럼 나타나는겁니까?
파일 변환에 사용하신 프로그램 이름 좀 알려주십시오.


경남 경찰청장님,
왜 손을 대셨는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파일 무결성이 손상된 이상 디지털 증거자료로 사용하지 못하십니다.


CCTV 원본 공개하십시오.

출처:아고라 자토방 로진님의 "CCTV 조작 의심 흔적-화면우측 검은 줄"그 분이 서거하신지 10일이 넘었지만, 아직도 뭔가 수상한 부분이 있기에 여기에 적습니다.

경찰의 조작 CCTV



경찰 발표 CCTV 편집본입니다.
물론 조작질된 것입니다.

조선일보와 정보기관의 도청

조선일보가 폭로한 도청 (노무현대통령님 사저에 대한 도청)

이 조합장은 이 매체와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이 등산을 떠나기 전에 깨어 있던 권여사가 “나도 같이 갈까요”라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은 “그럽시다”라고 대답했으나 권 여사가 준비하는 동안 먼저 나가 버렸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인터뷰 내용 인용기사 -

이 장면을 보지는 못하고 기계를 통해 멀리서 음성만 듣고 있었던 사람들은 어떤 결론을 만들었을까요?
그 답은 조선일보기사의 칼라색으로 표시부분을 자세히 보시면 나옵니다.


[속보] 노무현 전 대통령, 봉하마을 뒷산서 투신자살 서거
[조선일보]
2009년 05월 23일(토) 오전 09:14 가 가 이메일 프린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산행 도중 바위 아래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한민국은 헌정 사상 전직 대통령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태를 맞게 됐다.

이로써 향후 정국에 큰 파문이 예상된다.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돼 진행중인 검찰 수사도 전격적인 방향 전환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찰에 따르면 박연차 게이트 와 관련해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온 노무현 전 대통령은 23일 오전 6시50분쯤 자택이 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 뒷산에서 산행을 하던 중 벼랑 아래로 몸을 던졌다.

머리에 큰 상처를 입은 노 전 대통령은 곧바로 김해 세영병원으로 이송됐다. 노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은 후 즉시 부산대 양산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오전 9시30분 숨졌다.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 산행 당시 권양숙 여사도 동행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11시 문재인 전 청와대비서실장은 부산대병원에서 "노 전 대통령이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고 공식발표했다.

문 전 실장은 또 "노 전 대통령은 오전 5시45분께 사저에서 나와 봉화산에서 등산을 하던 중 오전 6시40분께 바위로 뛰어내리신 것으로 보인다"며 "노 전 대통령은 8시 13분께 병원에 도착했으나 상태가 위중해 9시 30분께 서거하셨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사고 직후 자택에서 가까운 김해시 세영병원으로 먼저 옮겨졌으나 이미 의식불명 상태였으며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다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이송했다.

백승완 부산대병원장은 노 전 대통령의 직접 사인은 머리 손상이라고 밝혔다. 백 병원장은 이날 오전 11시 브리핑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은 23일 오전 8시 23분쯤 인공호흡을 하며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도착 당시 의식이 없었고 자가호흡도 없었다"며 "두정부에 11㎝ 정도의 열상이 발견됐으며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회복이 안돼 오전 9시30분 중단했다"고 말했다.

백 병원장은 또 "뇌좌상이 확인됐는데 두부 손상이 직접 사인으로 확인됐다"고 말하고 "이외에도 늑골 골절, 골반 등 전신에 다발성 골절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주변 인사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사저 주변 산책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봉하산의 등산로는 그리 가파른 길이 아니어서 실족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23일은 검찰이 권양숙 여사를 재소환해 조사할 예정이었다. 검찰은 다음주 중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조선일보의 자살골입니다.
이것은 조선이 만든 또 하나의 불후의 명작이 될 것입니다.

그것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신속히 만들어낸
[조선일보] 2009년 05월 23일(토) 오전 09:14


아래 로고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의 것은 자폭의 증거입니다.



- 조선일보 로고
실제로 조선일보닷컴 추모관련 로고 확장자 명은 ‘http://image.chosun.com/cs/gnb/chosun_logo_090522.gif’로 ‘090522’로 2009년 5월 22일로 되어있다.

조선닷컴은 노 대통령 서거에 맞춰 로고를 흑백으로 바꾸고 로고 옆에 국화꽃을 넣었다. 로고 위에는 ´노무현 前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통상 디자이너들이 파일의 관리나 중복을 피하게 위해 파일명을 날짜로 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꼭 파일명이 날짜와 같아야 한다는 규정이나 규칙은 없지만 (조선이 늘 앞서갔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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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3, 2009 Korea






이 동영상이 저에게 의문을 주었습니다.


이 사진이 저의 육감에 글을 적어 주었습니다.


노제 '사랑으로' 백성은 가슴에 눈물 담고 보내드립니다.






yee7121 (2 주 전)
I was so angry to see all what have happened over there but at this moment, I just can't help but moaning. 잘가세요 대통령님, 목숨 붙어 있는 날까지 기억할 님.

노무현대통령님 귀향(歸鄕)



greenteaG
기분 좋다고 하시는데...그리 기분 좋은 봉하마을 고향에서...그리 가셨네요...노통은 영원한 제 영웅입니다. 고인을 추모합니다.

노무현대통령님의 민주화 연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 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습니다. 패가망신했습니다.

육백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생겨도 어떤 비리가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 밝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습니다.
눈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우리 육백년의 역사


자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 아이들의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일어섭시다.
바람 부는 데로 눕는 풀이 아닌
바람에 맞서는 들풀이 되어 일어섭시다.
불의의 바람을 가르는 들풀이 되어 나갑시다.

멸문지화 패가망신을 각오하고 일어서서 나갑시다!!!